Sunday, March 6, 2011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 - 1990년

제14회 1990년 월드컵은 유럽의 이탈리아에서 6월 8일부터 7월 8일까지 총 30일간 치러졌다. 이 대회는 위성방송 기술의 발달로 인해 총 167개국이 TV로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고,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가 도래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또한 1990년 월드컵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 대회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압박축구가 새로운 조류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90년 대회의 총 득점은 1986년 대회보다 17골이나 줄어들었고, 강한 압박에 바탕을 둔 수비적인 전술이 대회 전체의 주류를 이뤘다. 그로 인해 1990년 대회는 경기 내용 면에서 가장 볼거리가 적었던 지루한 월드컵으로 기억되고 있다.

개최국과 대회기간: 이탈리아, 1990년 6월 8일~7월 8일
참가국: 24개국
총 득점: 52경기 115골, 평균 2.21
총 관중: 2,516,348명, 평균 48,391
우승국: 서독(통산 3회)


지역예선
피파는 유럽 측에 다시금 14장의 티켓을 부여하는 한편, 이번에는 남미 팀으로 하여금 오세아니아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했다. 그와 동시에 유럽과 남미 내에서 2위 팀끼리 격돌하던 플레이오프 제도는 이번 대회 예선에 적용시키지 않았다. 이를 제외하면 티켓 배정이나 지역예선 진행방식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유럽 예선에서는 80년대 2회 연속 4강에 진출했던 프랑스의 본선 진출 실패가 최대 이변으로 손꼽혔는데,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감독은 현역에서 은퇴한 미셸 플라티니였다. 플라티니의 지휘 아래 파팽, 칸토나, 데샹, 블랑 등이 새로운 황금세대를 구축한 프랑스였지만, 키프러스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 뼈아픈 탈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남미의 경우 칠레와 브라질의 경기에서 터져 나온 ‘로하스 사건’이 월드컵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칠레의 골키퍼 로하스는 브라질 원정경기 도중 소녀 관중이 던진 폭죽에 맞아 얼굴 부위에 심한 부상을 당했는데, 그로 인해 칠레가 이 경기를 보이콧 하며 브라질의 몰수패를 요구하는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사진 판독 결과 소녀가 던진 폭죽은 로하스 골키퍼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칠레는 브라질 전 몰수패에 이은 지역예선 탈락 및 1994년 대회 출전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얼굴에 포비돈(빨간약)까지 발라가며 위장쇼를 펼친 로하스 역시 선수 자격을 영구 정지당했다가 2001년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징계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밖에 아시아에서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극동 지역을 제패하며 2회 연속 본선 무대에 올랐고, 중동에서는 UAE가 사상 첫 본선 진출에 성공하는 기쁨을 누렸다.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이 텃세를 이겨내고 호주와 뉴질랜드를 따돌렸지만, 콜롬비아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다시 한 번 본선 진출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룹대륙티켓예선참가국본선진출국
1유럽1루마니아, 덴마크, 그리스, 불가리아루마니아
2유럽2스웨덴, 잉글랜드, 폴란드, 알바니아스웨덴
잉글랜드
3유럽2소련, 오스트리아, 터키, 동독, 아이슬란드소련
오스트리아
4유럽2네덜란드, 서독, 핀란드, 웨일즈네덜란드
서독
5유럽2유고, 스코틀랜드, 프랑스, 노르웨이, 키프러스유고
스코틀랜드
6유럽2스페인, 아일랜드, 헝가리, 북아일랜드, 몰타스페인
아일랜드
7유럽2벨기에, 체코, 포르투갈, 스위스, 룩셈부르크벨기에
체코
8남미1우루과이, 볼리비아, 페루우루과이
9남미0.5콜롬비아, 파라과이, 에콰도르
* 플레이오프: 콜롬비아-이스라엘
콜롬비아
10남미1브라질, 칠레, 베네수엘라브라질
11북중미2최종: 코스타리카, 미국, 트리니다드토바고,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
미국
12아프리카2최종: 알제리-이집트, 카메룬-튀니지이집트
카메룬
13아시아2최종: 대한민국, UAE, 카타르, 중국, 사우디, 북한대한민국
UAE
14오세아니아0.5최종: 이스라엘, 호주, 뉴질랜드
* 플레이오프: 이스라엘-콜롬비아
-


본선 요약
지난 1986년 대회와 같은 방식으로 본선이 운용됐으며, 진행방식이나 규정상의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1990년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이변이 일어났는데,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가 카메룬과의 개막전에서 0-1로 패한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유로 1988 우승팀 네덜란드 또한 이집트에게 1-1로 발목을 잡혔고, 스코틀랜드마저 코스타리카에 0-1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카메룬과 코스타리카는 결국 16강까지 오르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중에서 8강 돌풍을 일으킨 카메룬은 1990년 대회의 다크호스이자 최고의 인기 팀으로서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이집트 역시 네덜란드와 아일랜드를 상대로 2무를 거두는 선전을 펼쳐 제 3 대륙의 성장세를 실감케 했다. 단, 아시아의 대한민국과 UAE는 현대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3패를 당해 아프리카 팀들과 크게 대조를 이뤘다.

한편 이 대회 최강의 우승후보로 손꼽혔던 네덜란드는 3무로 간신히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등 초반부터 부진을 겪었다. 반 바스텐, 훌리트,레이카르트로 이어지는 ‘오렌지 삼총사’의 활약은 서독과의 16강전에서도 불발에 그쳤고, 결국 조기 탈락의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이에 반해 네덜란드를 무찌른 서독과 개최국 이탈리아는 순항을 거듭했으며,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역시 조별리그 부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을 16강에서 격파하며 상승 분위기로 돌아섰다.

8강전 이후부터는 지루한 경기와 끊임없는 반칙, 승부차기가 난무하며 “카메룬 이외는 볼거리가 없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는 대부분의 팀들이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완성도 높은 압박 전술을 구사한 반면, 그에 걸맞은 공격 전술을 구사하지 못한 탓이 컸다. 마라도나를 비롯한 스타 선수들의 전반적인 활약상도 실망스런 수준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서독은 마테우스의 카리스마와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뒤를 잇는 통산 3회 우승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주요 선수
당초 1990년 월드컵은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훌리트(이상 네덜란드),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로타 마테우스(서독), 잔루카 비알리(이탈리아) 등이 자웅을 겨루는 ‘별들의 전쟁’이 될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오렌지 삼총사는 일찌감치 자취를 감췄고, 마라도나의 활약상도 지난 대회에 비한다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발휘한 마테우스 역시 대회 전체를 휘어잡기엔 무언가가 부족했다. 반면 갑자기 스타덤에 오른 ‘신데렐라’들의 활약은 기대 이상으로 돋보였다.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스킬라치는 본래 벤치를 뜨겁게 달구던 후보 공격수였으나 이 대회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맹활약을 펼쳤고, 득점왕과 MVP 타이틀까지 독식하는 기염을 토했다. 스킬라치는 월드컵에서의 반짝 활약 이후 다시금 그 활약을 재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월드컵 신데렐라’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골키퍼 역시 스킬라치 못지않은 깜짝 활약을 펼쳤다. 주전 골키퍼 품피도의 부상을 틈 타 주전으로 등극한 고이코체아는 16강전부터 신들린 듯한 선방으로 아르헨티나를 구해내는 한편, 승부차기에서도 맹활약을 펼쳐 ‘야신의 재림’으로 주목 받았다. 38세의 나이로 카메룬을 8강까지 이끈 로저 밀러 역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이 대회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그 외에는 잉글랜드의 폴 개스코인,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와 파올로 말디니, 아르헨티나의 클라우디오 카니쟈 등 젊은 신성들의 활약이 축구팬들에게 그나마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잉글랜드를 24년 만에 준결승까지 이끈 개스코인은 자국 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고, 4강전에서 흘린 뜨거운 눈물로 잔잔한 감동을 가져다줬다.


수상 기록
MVP
1위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2위 로타 마테우스(서독)
3위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득점
1위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6골)
2위 토마스 스쿠라비(체코/5골)
3위 게리 리네커(잉글랜드/4골), 로타 마테우스(서독/4골), 로저 밀러(카메룬/4골), 미첼(스페인/4골).

베스트 팀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아르헨티나), 루이스 코네호(코스타리카).
수비수: 안드레아스 브레메(서독),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이상 이탈리아).
미드필더: 로타 마테우스(서독), 드라간 스토이코비치(유고), 폴 개스코인(잉글랜드),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공격수: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로저 밀러(카메룬), 위르겐 클린스만(서독).


이탈리아 월드컵이모저모
01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는 이 대회를 통해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정상에 오른 두 번째 인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첫 번째 인물은 1970년 대회 당시 그 위업을 달성한 브라질의 마리오 자갈로다.
02
1990년 대회에서는 압박축구의 발전으로 인해 수비적이고 지루한 경기가 쉬지 않고 펼쳐졌다. 이 대회의 경기 당 2.21 득점은 월드컵 역사상 최저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03
반면 흥행 면에서는 250만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뒀으며, 외국인 관광 수익 또한 16억 달러에 달했다.
04
1990년 대회는 1985년 ‘헤이젤 참사’ 이후 처음으로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다. 훌리건들에 의해 41명의 사망자와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헤이젤 참사의 상처는 개최국 이탈리아로 하여금 철통같은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05
실제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훌리건들이 소동을 일으키자 이탈리아는 곧바로 4천 명의 경찰을 투입, 현장에서 훌리건 500여명을 체포하는 등 빠르고 정확한 대처를 선보였다.
06
개최국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클라우디오 카니쟈에게 골을 내줄 때까지 이 대회에서 단 1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517분 연속 무실점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최장시간 기록이다. 이 기록 달성의 주역들은 골키퍼 왈테르 젱가와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였다.
07
한편 준우승국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역사상 최소 득점 결승 진출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총 7경기에서 고작 4골만을 성공시켰다.
08
디에고 마라도나 역시 이 대회에서는 득점 사냥에 실패했다. 마라도나는 1982년, 1986년, 1994년 대회에서 모두 득점을 성공시켰지만 1990년 대회 무득점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4연속 월드컵 골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월드컵 4대회 연속골은 1958년 대회부터 1970년 대회까지 4연속으로 득점을 성공시킨 펠레(브라질)와 우베 젤러(서독)만이 보유하고 있는 진기록이다.
09
카메룬의 8강 진출은 이 대회 최대 이변이었으며, 피파는 그 활약상을 높이 평가하여 아프리카의 본선 출전권을 2장에서 3장으로 확대했다. 이는 1982년 대회의 알제리(2승 1패로 조별리그 탈락), 1986년 대회의 모로코(16강 진출) 등이 남긴 실적도 폭 넓게 반영된 결과다.
10
그 밖에 북중미 강호 멕시코는 1988년 올림픽에서 23세 연령 제한 규정을 위반한 것이 발각, 이 대회 본선 진출권을 피파로부터 박탈당했다.

제15회 미국 월드컵 - 1994년

제15회 1994년 월드컵은 북중미의 미국에서 6월 8일부터 7월 8일까지 총 30일간 치러졌다. 개최국 미국은 ‘축구 불모지’라는 간판을 벗어던지기 위해 “축구의 역사를 만들자(Making Soccer History)”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미국 시장 개척에 관심을 갖고 있던 피파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 결과 94년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최다 관중(약 358만명)을 동원했음은 물론, 경기 내용 면에서도 지난 대회보다 박진감이 더해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거뒀다. 우승은 이탈리아를 승부차기로 제압한 브라질이 차지했다.

개최국과 대회기간: 미국, 1994년 6월 17일~7월 17일
참가국: 24개국
총 득점: 52경기 141골, 평균 2.71
총 관중: 3,587,538명, 평균 68,991
우승국: 브라질(통산 4회)


지역예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982년 알제리, 1986년 모로코, 그리고 1990년 카메룬 등의 계속되는 활약에 힘입어 아프리카의 본선 티켓이 2장에서 3장으로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가장 많은 티켓(14장)을 확보하고 있던 유럽은 아프리카 측에 1장을 양보해야 했으며, 북중미 역시 개최국 미국의 자동 출전으로 인해 0.5장의 티켓을 추가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북중미 2위 팀은 오세아니아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른 뒤 남미 팀과 또 다시 2차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던 만큼 0.5장의 혜택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유럽 예선에서는 또 다시 강호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특히 전 대회 4강팀이자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탈락은 지역예선 최대의 충격이자 일대 사건이었다. 프랑스 역시 불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해 두 대회 연속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 밖에 유로 1992 우승팀 덴마크와 전통의 강호 체코 역시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유고의 경우 내전으로 인해 참가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남미 예선에서도 이변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1986년 대회 우승, 1990년 대회 준우승을 통해 브라질을 따돌리고 남미 최강으로 군림하던 아르헨티나가 플레이오프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발데라마와 아스프리야가 이끄는 콜롬비아에 믿기 어려운 0-5 대패를 당하며 조 2위로 밀려나는 충격을 경험했다. 결국 바실레 감독은 대표팀에서 은퇴한 마라도나까지 복귀시키는 강수를 뒀지만, 호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고전 끝에 본선 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예선의 경우 지난 대회와 다르게 중동 및 극동의 구분 없이 통합 형태로 치러졌다. 최종예선을 홈&어웨이 방식이 아닌, 제3의 장소인 카타르 도하에서 단기간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시켰다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라크, 사우디와의 무승부 이후 일본에 0-1로 패함으로써 탈락 위기를 맞이했지만, 이라크가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극적인 2-2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기적의 본선 진출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이 ‘도하의 기적’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형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룹대륙티켓예선참가국본선진출국
1유럽2이탈리아, 스위스,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몰타, 에스토니아이탈리아
스위스
2유럽2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 폴란드, 터키, 산마리노노르웨이
네덜란드
3유럽2스페인, 아일랜드, 덴마크, 북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알바니아스페인
아일랜드
4유럽2루마니아, 벨기에, 체코, 웨일즈, 키프러스, 파로군도루마니아
벨기에
5유럽2그리스, 러시아, 아이슬란드, 헝가리, 룩셈부르크그리스
러시아
6유럽2스웨덴, 불가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스라엘스웨덴
불가리아
7남미1.5콜롬비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페루
* 플레이오프: 아르헨티나-호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8남미2브라질, 볼리비아, 우루과이, 에콰도르, 베네수엘라브라질
볼리비아
9북중미1.5최종예선: 멕시코, 캐나다,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 플레이오프: 캐나다-호주
멕시코
10아프리카1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알제리나이지리아
11아프리카1모로코, 잠비아, 세네갈모로코
12아프리카1카메룬, 짐바브웨, 기니카메룬
13아시아2최종: 사우디, 대한민국, 일본, 이라크, 이란, 북한사우디
대한민국
14오세아니아0.5최종: 호주-뉴질랜드
* 플레이오프: 호주-캐나다, 아르헨티나-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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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요약
본선 진행방식에 있어서는 지난 1990년 대회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승리 팀에게 승점 2점이 아닌 3점이 주어지고, 선수교체 인원이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났다는 것 정도가 1994년 대회를 통해 일어난 눈에 띄는 변화였다. 그 외에도 오프사이드 기준이 이전보다 완화되는 한편, 골키퍼가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행위가 금지되는 등 공격축구를 이끌어내기 위한 피파 측의 노력은 매우 적극적으로 감행됐다. 그 결과 1994년 대회는 1990년 대회보다 총 득점 수가 26골이나 늘어났다.

조별리그에서 일어난 최대 사건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도핑 테스트 적발에 이은 출전 자격 박탈이었다. 코카인 양성 반응을 나타낸 마라도나는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 이후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한 아르헨티나 역시 16강에서 루마니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대한민국은 스페인, 독일 등의 강호들과 호승부를 연출하며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지만, 볼리비아를 상대로 승점 3점을 획득하지 못해 아쉽게 16강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16강 토너먼트 이후 대회 전체를 자신의 독무대로 만든 스타 중의 스타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였다. 나이지리아와의 16강전, 스페인과의 8강전, 그리고 불가리아와의 4강전에서 도합 5골을 폭발시킨 바조는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 등을 따돌리고 가장 강력한 MVP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바조는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그 유명한 승부차기 실축을 범했고, 우승 트로피마저 브라질에 내줘야 했다. 바조가 1954년 대회 푸스카스 1974년 대회 크루이프에 이어 비운의 2인자로 이름을 올리고 만 순간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를 격침시키고 대회 정상에 오른 브라질은 무려 2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 우승을 통해 브라질은 독일과 이탈리아를 따돌리고 가장 먼저 통산 4회 우승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주요 선수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와 브라질의 호마리우가 펼친 라이벌 대결은 1994년 대회를 뜨겁게 달군 최대 화젯거리였다. 결승전 직전까지 보다 강한 임팩트를 남긴 쪽은 바조였지만, 우승과 함께 최후에 미소를 지은 승리자는 호마리우였다. 호마리우는 바조를 따돌리고 월드컵 MVP 및 1994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등을 휩쓸며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만끽했다.

6골로 득점왕에 오른 불가리아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역시 1994년 대회를 빛낸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불가리아의 공격을 진두지휘한 스토이치코프는 특히 독일과의 8강전에서 성공시킨 프리킥 결승골로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로타 마테우스는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일관하며 8강에서 고배를 마셨고, 독일에서는 위르겐 클린스만 정도가 5골을 터뜨리며 제 몫을 다해냈을 뿐이었다.

그 밖에 스웨덴의 토마스 브롤린, 루마니아의 게오르그 하지, 네덜란드의 데니스 베르캄프 등도 앞선 스타 선수들과 함께 1994년 대회의 공격적인 흐름을 주도했다. 지난 대회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카메룬의 로저 밀러는 만 42세의 나이로 1994년 대회에도 참가, 월드컵 최고령 출전 및 최고령 득점 기록을 모두 새롭게 썼다.


수상 기록
MVP
1위 호마리우(브라질)
2위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
3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득점
1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6골), 올렉 샬렌코(러시아/6골)
3위 호마리우(브라질/5골),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5골), 위르겐 클린스만(독일/5골), 케네트 안데르손(스웨덴/6골).
7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4골) 외 2명.

베스트 팀
골키퍼: 미셸 프뢰돔(벨기에).
수비수: 조르지뉴, 마르시오 산토스(이상 브라질), 파올로 말디니(이탈리아).
미드필더: 둥가(브라질),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불가리아), 게오르그 하지(루마니아), 토마스 브롤린(스웨덴).
공격수: 호마리우(브라질), 로베르토 바지오(이탈리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미국 월드컵 이모저모
01
1994년 미국 월드컵은 대회 역사상 최다 관중(약 350만 명)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이 반드시 미국의 높아진 축구 열기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내 월드컵 경기 평균 시청률은 4.2%로 사실상 바닥을 쳤고, 설문조사 결과 월드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민들도 여전히 70% 정도에 달했다.
02
그럼에도 미국의 최다 관중 동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경기장의 평균수용능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눈에 띄게 컸기 때문이다. 미국은 종합 구장이나 미식축구 구장을 확장하여 월드컵 구장으로 활용했는데, 총 9개 구장 가운데 7개 구장이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형 구장들은 대부분이 히스패닉계, 유럽 이민계, 그리고 외국인 응원단으로 채워졌다.
03
축구는 여전히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1984년 LA 올림픽에서의 흥행 이후 그 입지가 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히스패닉계를 겨냥한 축구 시장의 활성화에 남다른 관심을 나타내 왔다. 1994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결과 1996년에는 메이저리그사커(MLS)가 정식 출범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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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의 도핑 테스트 적발은 이 대회 최고의 빅뉴스였다. 명백한 코카인 양성 반응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는 눈물로써 결백을 호소했는데, “트레이너의 추천으로 복용해 온 파워 드링크에 문제가 될 만한 성분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절대로 고의로 약물을 복용한 것은 아니었다”라는 것이 마라도나 측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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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콜롬비아에서는 미국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귀국 후 마피아에 의해 총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로 인해 도박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마피아가 분을 참지 못하고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콜롬비아는 국제적 비난을 면할 수 없었고, 에스코바르에겐 애도의 물결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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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월드컵은 경기 후 비디오 판독이 도입된 최초의 대회였다. 비디오 판독에 의해 최초로 징계를 당한 선수는 이탈리아 수비수 마우로 타소티였는데, 타소티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루이스 엔리케의 코뼈를 부러뜨렸음에도 반칙 판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결과 타소티는 명백한 반칙을 범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로 인해 8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 철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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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독일의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자국 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당한 독특한 케이스였다. 에펜베르크는 대한민국과의 조별리그 경기 도중 팬들의 야유를 참지 못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제스처를 취했고, 이 장면이 발각되어 월드컵 도중 대표팀에서 중도하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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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월드컵은 역대 최초로 승부차기에 의해 결승전 승패가 가려진 대회다. 이 결승전 최초의 승부차기에서 가장 큰 희생양으로 떠오른 선수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로서 실축을 범한 로베르토 바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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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조는 이 승부차기 실축 이후 성난 팬들에 의해 동상이 부서지는 등 엄청난 수난을 겪어야 했다. 훗날 바조는 “1994년 월드컵 이후 승부차기를 실축하는 꿈을 여러 차례 꿨다”며 트라우마를 겪었음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