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월드컵 규정 - 월드컵 대회 규정의 역사

월드컵은 지금까지 총 18번의 대회를 치러내는 동안 꾸준히 발전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피파는 최대한 공평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세계 최강 팀을 가려내기 위해 규정 및 제도 정비에 온 힘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이 완성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오늘날의 시스템은 결코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 복잡 다난했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토너먼트와 2차리그 제도
월드컵의 본선 진행방식은 1회 대회부터 18회 대회까지 꾸준히 변화되어 왔다. 우선 초대 월드컵의 진행방식은 출전 13개국을 4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르고, 그 후 각 조 1위 팀이 4강 토너먼트를 진행하는 오늘날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1934년, 1938년 대회에서는 전체적인 박진감을 높이기 위해 16개국이 조별리그 없이 곧바로 토너먼트 전으로 돌입하는 ‘죽음의 방식’을 채택했다.

12년 만에 재개된 1950년 대회에서는 다시 한 번 두드러진 변화가 일어났다. 개최국 브라질은 관중 수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떻게든 경기 숫자를 늘리길 원했고, 그 결과 피파 측에 2차 풀리그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조별리그 이후 각 조 1위 팀들이 4강 토너먼트 전을 치렀던 이전 방식과 다르게, 결선리그라는 명목 아래 다시 한 번 풀리그 전을 치르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인해 1950년 대회는 1930년 대회와 같은 13개국이 참가했음에도 불구, 4경기를 추가적으로 더 치러낼 수 있었다. 단, 결선리그 방식으로 우승팀, 준우승팀, 3위팀, 4위팀을 가려냈기 때문에 이 대회에는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결승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피파는 다음 대회까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많다고 생각했다.

결국 피파는 1954년 대회부터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했는데,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원점으로의 회귀’였다. 16개국을 4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르고, 그 후 8강부터 토너먼트 전에 돌입하는 기존의 방식을 다시금 채택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1970년 대회까지 16년 간 유지됐고, 1986년 대회에 이르러 조금 개량된 형태로 또 다시 부활했다. 1974년 대회부터 피파가 2차리그제를 도입한 이유는 경기 수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였다. 1970년대 들어 개최국들의 관중 동원력이 눈에 띄게 상승함에 따라 이에 발맞춰 관중 수익의 증대를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피파는 1차 조별리그 이후 8강 토너먼트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다시금 8개 팀을 2개 조로 나누어 2차리그를 소화하도록 했다. 이후 2개 조 1위 팀끼리 결승전을, 2위 팀끼리 3·4위전을 진행함에 따라 경기 수를 이전보다 6시합이나 늘릴 수 있었다.

본선 출전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난 1982년 대회에서는 2차리그 방식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24개국을 4개 팀씩 6개 조로 나누고, 각 조 1, 2위 팀들을 다시 3개 팀씩 4개조로 나누어 2차리그를 치르게 한 다음, 각 조 1위 팀 4개국이 준결승부터 토너먼트 전으로 돌입하는 복잡한 다단계 시스템이었다. 이 방식은 대회 전체의 박진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86년 대회부터 조별리그 후 16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24개국이 본선에 참가한 1986년~1994년 대회에서는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 16강 토너먼트의 문호를 한 층 넓혔다. 이는 4개 팀씩 6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진행할 경우 각 조 1, 2위 팀들을 다 합쳐도 12개 팀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6강부터 토너먼트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3위 팀 6개국 가운데 상위 성적의 4개국을 추가로 합류시켜야 했다. 이러한 와일드카드 제도는1998년 대회부터 본선 출전국이 32개국으로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폐지되고 말았다.



2. 플레이오프와 득실차 제도
월드컵 초창기 본선 진행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플레이오프 재경기 제도였다. 1930년 대회부터 1958년 대회까지 고스란히 유지된 이 제도는 조별리그에서 두 팀이 승점 동률을 기록할 경우 재경기를 통해 다음 라운드 진출 팀을 가려내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조별리그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를 경우 그 팀의 체력 저하 및 전력 손실 등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대두됐다.

결국 피파는 보다 효과적인 순위 선별 기준을 제시해야만 했다. 고심 끝에 피파는 1962년 대회부터 득점률(Goal Average)을 새로운 기준으로 도입했는데, 이는 총득점을 총실점으로 나눈 다음 그 값을 기준 삼아 승점이 같은 두 팀의 순위를 구분 짓는 방식이었다. 최초로 이 규정이 적용되어 순위가 판가름 난 두 팀은 1962년 대회 3조의 멕시코(3위)와 스페인(4위), 그리고 4조의 잉글랜드(2위)와 아르헨티나(3위)였다.

 
 순위
 국가
  경기 
  승 
  무 
  패 
  승점 
  득 
  실 
  득점률 
1
 헝가리
 3
 2
 1
 0
 5
 8
 2
 4.00
2
 잉글랜드
 3
 1
 1
 1
 3
 4
 3
 1.33
3
 아르헨티나
 3
 1
 1
 1
 3
 2
 3
 0.67
4
 불가리아
 3
 0
 1
 2
 1
 1
 7
 0.14


그러나 득점률 제도에는 몇 가지 형평성 문제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득실차를 적용시킬 경우 10득점 8실점을 기록한 팀(+2)은 2득점 1실점(+1)을 기록한 팀에 우위를 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득점률을 적용시킬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전자가 10÷8=1.25인 반면 후자는 2÷1=2이기 때문에 득실차가 아닌 득점률 기준의 시스템 하에서는 후자의 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득점을 많이 하는 것보다도 실점을 적게 할수록 유리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특히 두 팀 모두가 무실점을 기록할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 이유는 득점이 몇이 됐든 총득점을 0으로 나누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팀 중 한 팀은 10득점 0실점을, 다른 한 팀은 3득점 0실점을 기록하더라도 두 팀의 순위는 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득점률이 조별리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통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기준이란 것을 의미했다. 결국 피파는 1970년 대회부터 득실차→다득점→상대전적→추첨 순으로 순위를 가리는 현재의 규정을 새롭게 적용시켰다.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3. 선수교체 제도
월드컵 경기에 선수교체 제도가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처음으로 선수교체가 가능해진 대회는 1970년 월드컵이었는데, 그 전까지 각 팀들은 경기에 참여하고 있던 선수가 부상으로 실려 나가더라도 벤치 멤버를 교체 투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로 인해 한 명의 선수가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빠져나간 팀은 10명으로 경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미비한 규정에 희생된 대표적인 팀은 1958년 대회의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핵심 수비수 종케가 전반 초반에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일찍부터 10명으로 브라질에 저항하다 2-5 패배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더 나아가 1966년 대회에서도 미드필더 불가렐리를 부상으로 잃은 이탈리아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북한에 0-1로 무릎을 꿇는 사건이 일어났다.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사례가 늘어나자 피파로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피파는 1970년 대회에 이르러 한 경기에 두 명까지 선수를 교체 투입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정을 적용시켰다. 그러나 처음으로 선수교체가 도입된 대회인 만큼, 감독들의 용병술은 오늘날과 같이 체계적이고 치밀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로, 잉글랜드의 램지 감독은 서독과의 8강전에서 보비 찰튼을 지나치게 일찍 벤치로 불러들이는 유명한 실수를 범했다. 2-1로 앞서고 있던 후반 25분, 램지 감독이 4강전에 대비하여 찰튼에게 휴식을 부여한 것이다. 이 결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경기 종료를 20분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그것도 미드필드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던 찰튼이 그라운드 위에서 사라지자 경기 흐름은 무서운 속도로 뒤바뀌어 버렸다. 이는 램지 감독으로서는 좀처럼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고, 결국 잉글랜드는 서독에게 2-3 역전패를 당하게 된다. 램지 감독의 실수는 세계 각국의 감독들이 선수교체 용병술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발카레지 감독은 1970년 대회 당시 마쫄라에게 전반 45분을, 리베라에게 후반 45분을 맡기는 ‘전·후반 분담제’를 도입하여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는 얼핏 보면 공정하고 효과적인 용병술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이르러서는 두 선수 모두가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감독들의 용병술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체계적인 발전을 거듭해나갈 수 있었다. 그 밖에 피파는 1994년 대회에 이르러 선수교체 가능요원을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렸고, 선수들이 더욱 폭 넓게 체력을 안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4. 승부차기 제도
득점률, 득실차, 다득점과 같은 기준이 성공적으로 도입됨에 따라 조별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 재경기를 폐지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토너먼트 전에서 발생했다. 리그전이 아닌 단판 승부제인 만큼 연장전 포함 120분 동안 승패를 가리지 못할 경우 추첨 혹은 재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피파가 도입한 새로운 규정이 바로 승부차기 제도였다. 이 규정은 1978년 대회 지역예선부터 처음으로 도입됐다. 실제로 아프리카 예선 1라운드에서는 모로코와 튀니지가 홈&어웨이 두 경기를 모두 1-1로 비기는 바람에 최초의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렸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결승전, 그리고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3·4위전이 모두 120분 안에 승패가 가려짐에 따라 승부차기를 감상할 기회도 발생하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 역사상 첫 승부차기는 4년 뒤 1982년 대회 준결승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서독과 프랑스가 3-3으로 120분 경기를 끝마친 뒤 승부차기로 돌입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첫 번째 승부차기에서 서독은 프랑스에 5-4로 승리를 거뒀고, 독일은 오늘날까지 승부차기 무패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그 후 1994년 대회 결승전에서는 월드컵 결승 역사상 최초로 승부차기에 의해 우승팀이 판가름 났다. 2006년 대회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일부 축구인들은 “우승팀만큼은 승부차기로 가려서는 안 된다” 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등장하지 않는 한 냉혹한 승부차기의 세계는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승부차기는 1978년에 처음 시행되었다.
사진은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린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 대 이탈리아전


5. 골든골 제도
골든골(Golden Goal)이란 연장전에서 선제골을 성공시킨 팀을 그대로 승자로 인정하는 제도다. 즉, 어느 쪽에서든 먼저 골을 터뜨리기만 하면 연장전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경기가 종료된다. 1998년 대회부터 도입된 이 골든골 제도는 연장전 30분을 소화함에 따라 발생하는 체력적 소모를 완화시키고, 더 나아가 경기 전체의 박진감을 늘려줄 것으로 커다란 기대를 모았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연장 골든골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 난 경기는 프랑스와 파라과이의 16강전이었다. 0-0으로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전으로 돌입했고, 프랑스는 로랑 블랑의 골든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4년 뒤 2002년 대회에서도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세네갈과 스웨덴의 16강전, 터키와 세네갈의 8강전 등에서 골든골에 의한 승리가 연달아 발생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감독들은 골든골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제도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연장전에서 페널티킥으로 골든골이 터져 나오는 상황(대표적인 예는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유로 2000 4강전)이 발생할 경우 주심을 향한 판정 논란이 빗발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방식으로 패배한 팀의 입장도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유럽축구연맹(UEFA)은 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 및 유로 2004를 통해 골든골 제도를 완화시킨 실버골 제도를 도입했다. 연장 전반에 득점이 터져 나올 경우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전반 15분은 끝까지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실버골(Silver Goal) 제도의 요지였다. 그러나 2004년 이후 피파는 골든골과 실버골을 전부 폐지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결국 최근의 국가 대항전이나 클럽 대항전은 모두 연장전 30분을 끝까지 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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