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파올로 로시 -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장구한 월드컵의 역사에서도 대회 최고의 선수와 최다득점자에 동시에 오르면서 팀까지 우승으로 이끈 인물은 매우 드물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이전까지 그러한 기록을 남긴 이들은 1962년의 가린샤(브라질)와 1978년의 마리오 켐페스(아르헨티나)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1982년 이탈리아의 파올로 로시가 그 위업을 달성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선수도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다.


킬러 본능 
축구는 골을 넣어야 승리할 수 있는 스포츠다. 그리고 축구사에는 골 넣는 과업에 있어 실로 전문적인 재주를 지녔던 사나이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계열의 가장 극명한 사례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활약한 서독의 게르트 뮐러일 것이다.

일견 뮐러는 화려한 개인기도 무시무시한 신체 조건도 지니고 있지 않은 ‘그저 그런 공격수’의 이미지에도 불구,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할 뿐 아니라 어떻게든 볼을 골문 안으로 들어가게끔 하는 본능적인 솜씨를 지닌 사나이였다. 사실 이는 수비수를 따돌리며 좋은 위치를 찾아 들어가는 센스, 근거리에서의 슈팅 및 헤딩 정확도, 반응 속도, 근성과 집중력 등이 좋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고 따라서 ‘뮐러 류의 능력’ 또한 매우 유의미한 축구 테크닉의 일종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러한 유형의 공격수는 ‘창의적이다’, ‘마법사 같다’는 등의 평가를 받기는 다소간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뮐러의 시대가 저물어갈 때쯤, 이탈리아 축구에도 그에 비견될 만한 천부적인 골잡이가 출현했으니 그가 바로 파올로 로시다.

로시는 어린 시절 유벤투스 유스 팀과 함께 했지만 유벤투스는 무릎이 좋지 않았던 그를 코모로 임대했고 결국 그는 1976년 세리에B 클럽 비첸자에 둥지를 틀게 된다. 비첸자는 로시에겐 행운의 장소였다. 그 곳에서 로시는 윙어에서 중앙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꾸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또 한 명의 기막힌 골잡이를 탄생시킨 출발점이 됐다.

 
타고난 '킬러 본능'의 소유자 파올로 로시

1976-77시즌 로시는 곧바로 21골을 터뜨려 비첸자의 승격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지만 이는 그 다음 시즌 그가 세리에A에서 24골을 잡아내며 비첸자를 2위까지 끌어올린 놀라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었다. 로시는 세리에B와 세리에A에서 연거푸 득점왕에 오른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이는 훗날 유벤투스의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가 2007년과 2008년 세리에B와 A에서 연속 시즌 득점왕이 되기까지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거액을 들여 로시를 완전 영입한 당시의 비첸자는 ‘레알 비첸자(Real Vicenza)’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인상적인 데뷔
그 후 로시는 엔조 베아르조트가 이끄는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의 일원이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로시의 활약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필자의 판단으론, 순수 경기 내용적 측면만을 고려할 때 로시가 처음 출전했던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은 그가 모든 것을 차지한 4년 후의 그것보다도 오히려 나았으면 나았다. 물론 축구사는 1982년의 파올로 로시를 더 많이 기억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이는 어쩌면 로시의 비첸자 후배 로베르토 바조(바조의 경력이 시작된 곳이 3부리그 비첸자다)의 경우와도 다소간 유사성이 있다. 절묘하게 그리고 어김없이 터져 나왔던 바조의 골들이 1994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결승으로 이끈 원동력이기는 하더라도, 그 이전 1990년 월드컵에서 더 젊은 바조가 펼쳐 보인 활약 또한 실로 인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로시는 유벤투스 선수들인 로베르토 베테가, 프랑코 카우지오와 매우 훌륭한 호흡을 과시했으며 특히 자신의 옛 포지션인 측면 위치로 돌아 나아갈 경우에도 좋은 플레이를 펼쳐보였다. 로시는 1978 월드컵에서 세 골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활발한 움직임과 정확한 패스에 의한 어시스트들을 비롯, 이탈리아의 공격을 화끈한 것으로 만드는 일에 크게 공헌했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로시가 전체적으로 ‘골의 거장’ 게르트 뮐러 계열의 선수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1978년에 국한한 로시의 모습은 조금은 더 다재다능한 부류의 냄새를 풍겼고 사실상 그것이 그가 첫 월드컵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이유다.


불명예스런 징계
1979년 비첸자가 강등을 당하자 로시는 페루자 임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1980년 AC 밀란, 라치오, 볼로냐, 팔레르모, 페루자 등이 연루된 축구 도박 스캔들이 이탈리아를 뒤흔들었고 이 사건에서 로시는 뇌물 수수 혐의로 3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에 처해진다(후에 이것은 2년으로 경감됐다). 이탈리아 축구의 새로운 희망은 이렇게 그라운드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됐다.


역적에서 영웅으로 
1981년 유벤투스로 소속을 옮긴 로시는 월드컵 직전인 1982년 4월 29일 징계로부터 돌아온다. 2년의 공백에도 불구, 그를 신뢰해온 대표 팀 은사 베아르조트는 로시를 월드컵 본선 첫 경기부터 계속 주전으로 기용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이 1차 조별리그 세 경기(대 폴란드, 페루, 카메룬)에서 단 두 골만을 터뜨리며 3무승부를 거두자 베아르조트에 대한 언론의 비난은 점점 더 거세졌다. 특히 실전 감각이 부족한 로시가 세 경기 동안 한 골도 터뜨리지 못한 것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언론의 공격에 맞서 베아르조트는 언론 접촉을 아예 차단하고서 2차 조별리그를 준비했다. 간신히 1차 리그를 통과한 이탈리아는 최강으로 평가받는 브라질,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를 이뤘고 따라서 이탈리아가 이 조에서 무사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의 십자포화 속에 디노 조프를 위시한 이탈리아 선수단의 결속력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정신적 무장은 실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와 4년 전 우승 멤버들이 포진한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지안카를로 안토뇨니, 브루노 콘티, 클라우디오 젠틸레, 마르코 타르델리 등이 제 몫을 해내며 2-1의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로시는 이 경기에서도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그 다음 브라질 전(브라질의 입장에서는 이탈리아와 비기기만 해도 준결승 진출)이야말로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대결은 한 마디로 ‘로시의, 로시에 의한, 로시를 위한’ 경기였다. 지쿠, 소크라테스, 팔카웅, 에데르 등이 포진하는 화려한 브라질은 펠레가 이끌던 앞선 세대의 브라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세대로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그 브라질은 기회만 왔다하면 골을 성공시키는 로시의 해트트릭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이 경기에서 로시의 위치 선정 및 헤딩, 슈팅의 정확도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반면 지쿠와 소크라테스가 엮어내는 절묘한 플레이에도 불구, 공격력을 과신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수비가 브라질의 발목을 잡았다. 이는 분명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고 이 한 경기만으로도 로시는 이탈리아의 ‘국민 역적’에서 단숨에 ‘국민 영웅’이 되었다.

이후의 이탈리아는 파죽지세였다. 로시는 준결승 폴란드 전에서도 두 골을 터뜨렸으며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후반전 0-0의 균형을 깨뜨리는 선제골을 기록, 1938년 이후 처음으로 이탈리아가 감격의 월드컵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했다. 결국 1982년 월드컵 최후의 승자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지쿠도, 마라도나도, 미셸 플라티니도, 칼 하인츠 루메니게도 아닌 2년의 징계로부터 돌아온 로시의 몫이 되었다.


짧은 경력 큰 업적 
1982년 월드컵 이후 로시는 유벤투스에서 젠틸레, 타르델리, 안토니오 카브리니, 가에타노 시레아 등의 대표팀 동료들, 그리고 플라티니, 즈비그에프 보니에크 같은 월드컵 스타들과 더불어 활약하면서 크고 작은 트로피들을 계속 들어 올렸다. 그 가운데에서도 ‘헤이젤 참사’가 발생했던 1985년 리버풀을 꺾고 차지한 유러피언컵은 로시의 클럽 축구 최대의 트로피로 기록된다. 이후 그는 밀란으로 이적해 1985-86시즌 ‘밀란 더비’에서 두 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로시의 선수 경력은 결코 길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의 잦은 부상 탓이었다. 결국 로시는 31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택하게 됐지만, 이탈리아 축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희대의 골잡이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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