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13일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스포츠 섹션은 놀라우리만치 어이없는 유형의 헤드라인을 뽑았다. FIFA 올해의 선수에서 5위 안에 입상한 선수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페르난도 토레스, 카카, 사비)이 함께 찍은 사진 위에 적힌 그 헤드라인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사비)”였다. 어쩌면 이는 토털 풋볼의 중심에 놓여 있는 사비의 플레이를 주의 깊게 관찰해본 적이 전혀 없거나, 혹은 이에 더하여 사비에 관한 각종 기록과 수치들을 아예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쓰여진 제목일 듯싶다. 조크라기보다 폄하의 인상을 풍겼던 이 헤드라인은 곧바로 많은 이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토털 풋볼은 한마디로 상대를 ‘질식사’시키는 축구다. 대부분 상대들과의 경기에서 우세함을 넘어 경이적인 수준의 볼 점유율을 가져가곤 하는 그들의 축구는 압박과 수비로 대항하는 상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면서 먼저 지쳐버리게끔 한다. 사람이 아무리 빠른들 볼보다 빠르지는 않은 까닭이며, 높은 지역에서 공격을 지속시키는 측에 비해 수비하는 측의 육체적, 심리적 피로는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유형의 토털 풋볼을 상대하는 팀들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공산이 크다. 남아공 월드컵 토너먼트 단계에서 스페인의 골들이 거의 다 경기 후반부에 터져 나왔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를 죄어들어가며 종국에는 질식사에 이르게 만드는 범죄(?)의 ‘주범’ 혹은 ‘배후 인물’ 한 명을 지목하자면 그가 바로 사비다.
바르셀로나 DNA 
사비는 그의 사수이자 스승인 과르디올라의 표현대로 “바르셀로나 DNA를 지닌 선수” 그 자체다. 11세에 바르셀로나 유스에 합류한 그 순간부터 사비의 축구는 크루이프식 전통을 상징하는 ‘receive, pass, offer’ 세 개의 단어로써 정의되어 버렸고, 그는 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8세였던 1998년 여름 1군 경기에 데뷔한 사비는 데뷔 시즌부터 영향력을 발휘, 팀의 긴요한 자원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다. 그가 클럽의 중심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올라서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이는 과르디올라의 부상 및 이적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이후 사비 특유의 재능은 프랑크 레이카르트 휘하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특히 레이카르트가 2003-04시즌 후반 전투적인 미드필더 에드가 다비즈를 임대해온 사건은 사비의 커리어에 있어 적잖이 의미가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적절한 지원이 사비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현시킬 수 있음이 드러났던 까닭이다.
임무에 충실한, 너무나도 충실한 
샤비는 자기 자신의 임무가 기본적으로 “패스”라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기본적 임무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한 사나이다. 근년에 이르러 샤비는 참여하는 대회, 뛰는 경기마다 그 어떠한 선수(이니에스타를 비롯한 팀 동료들까지 포함해)보다 많은 패스를 하고 그 어떠한 선수보다 높은 성공률을 기록해왔는데, 통상 그는 경기당 100회 안팎의 패스를 뿌려 80~90%를 성공시키는 경이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곤 한다. 이는 패스 자체의 정확도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의 지속적 압박 속에서도 볼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테크닉, 탁월한 시야와 예측력, 여기에 뛰는 양까지 많아야만 가능한 수치다. 물론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템포와 리듬의 조절 또한 샤비의 전문 분야다.
마라도나의 꿈 
아르헨티나의 결과가 기대치에 미달할 때마다 메시의 역량에 대한 논쟁이 펼쳐지곤 한다. “메시는 사비가 없으면 별것 아닌 선수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대표팀의 성적과는 별개로 메시는 여전히 엄청난 선수다. 거칠고 조직적인 수비가 횡행하는 작금의 그라운드에서 그는 비길 데 없이 놀라운 플레이들을 빈번하게 펼쳐 보이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고, 역으로 사비와 함께 뛴다고 해서 모두가 메시처럼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까닭이다. 그리고 사실상, 선수단 구성과 시스템의 차이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클럽과 대표 팀에서의 결과가 달라지는 선수는 비단 메시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한 듯하다. 바르셀로나에서 사비는 ‘메시가 메시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아주는 전문가와도 같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는 사비와 같은 선수가 없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결론은 이것일 게다. 메시는 사비의 유무와 상관없이 최고의 선수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사비가 존재하지 않는 팀에서 메시가 위대한 역사를 완성하기란 요즈음과 같은 환경에서는 결코 쉽지가 않다. 아르헨티나 감독 디에고 마라도나가 ‘보유하고 싶은 스페인 선수’를 묻는 질문에 “사비”라 답했던 것은 매우 당연했다.
큰 경기엔 어시스트 
2009년 5월2일과 2010년 4월10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사비는 악몽 그 자체였다. 레알이 2-6, 0-2로 패했던 그 두 경기에서 사비가 성공시킨 어시스트의 개수는 무려 여섯 개. 경기를 컨트롤하며 절묘한 패스를 뿌려대는 사비는 레알의 팬들에겐 메시보다도 더욱 얄미운 존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큰 경기들에서 사비의 어시스트 솜씨가 빛난 사례들은 물론 더 있다. 스페인 대표 팀의 오랜 트로피 갈증을 풀게끔 했던 유로2008 결승전 토레스의 결승골 어시스트의 주인공도 사비였다. 또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메시가 작렬시킨 쐐기 헤딩골도 사비의 발끝으로부터 시작됐었다.
스페인 최고? 어쩌면 세계 최고? - 다비드 비야
2005-06시즌부터 2009-10시즌까지의 다섯 시즌 동안, 다비드 비야가 발렌시아 소속으로 리그 경기들에서 터뜨린 골수는 모두 ‘108골’이다. 이는 다른 세계 정상급 골잡이들의 실적을 능가하는 수치다. 같은 기간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알 마드리드)는 리그 101골을 터뜨렸고, 디에고 밀리토(사라고사/제노아/인터밀란)가 99골, 사무엘 에토(바르셀로나/인터밀란) 96골,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87골, 페르난도 토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리버풀) 84골,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유벤투스/인터밀란/바르셀로나)가 80골씩을 터뜨렸으며 디디에 드록바(첼시)의 리그 득점은 74골이었다. 물론 각자의 조건들은 모두 다르다. 각자가 소속 클럽에서 맡고 있는 포지션 및 역할, 클럽들의 시스템에 모두 차이가 있으며,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한 기간이 길었던 이들도 있다. 또한 각 클럽이 처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선수기용에 변화가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비야가 전 세계 그 어떠한 선수 이상으로 꾸준하게 팀 득점에 기여해왔다는 사실 한 가지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비야가 얼마나 좋은 공격수인지를 말해주는 기록과 통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근년에 이르러 비야는 ‘클럽 경기와 국가대표 경기를 종합할 경우’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나이였다. 실례로 2009년 한 해 동안 비야는 발렌시아와 스페인 대표 팀에서 도합 ‘43골’을 터뜨렸는데, 이는 메시(41골), 드록바(39골), 에토(33골), 이브라히모비치(32골), 루니(31골), 호날두(30골), 토레스(29골)의 기록을 모두 뛰어넘는 수치다.
비야는 스페인이 35경기 연속 무패(브라질과 타이기록)를 달렸던 기간 동안에도 22골을 작렬시켜 스페인 무패 행진의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당연하게도 대형 토너먼트에서의 골수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2006 독일월드컵에서 3골을 잡아냈던 비야는 유로2008에서는 4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고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3골, 그리고 남아공에서는 5골을 도맡았다. 한 마디로 스페인 대표팀의 계속되는 영광은 비야의 꾸준한 골 퍼레이드와 더불어 이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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