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파비오 칸나바로 - 2006년 독일 월드컵

축구에서 때때로 수비수나 골키퍼의 활약은 공격수나 미드필더에 비해 과소평가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수비수나 골키퍼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거나 메이저 대회 MVP로 선정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월드컵 무대에서도 위와 같은 영예를 차지했던 선수는 지금까지 단 두 번뿐이다. 기자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초대 월드컵 MVP 호세 나사찌(우루과이), 그리고 가장 최근에 열린 월드컵에서 역대 최고의 수비 능력을 선보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작지만 매운 고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칸나바로는 그 지역 명문팀 SSC 나폴리 소속의 유스 선수이자 볼보이로 활동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이 소년은 ‘마라도나 시대’의 나폴리를 두 눈으로 바라보며 10대 시절을 보냈고, 고향팀을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칸나바로가 가장 좋아하던 선수 역시 나폴리의 10번 디에고 마라도나와 주전 수비수 치로 페라라였다. 성실한 노력파였던 칸나바로는 그 열정을 높이 평가받아 16세의 나이로 성인팀 훈련에 참가하는 기회를 잡았다. 이 연습경기에는 디에고 마라도나 역시 성인팀 소속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다. 매우 놀랍게도, 칸나바로는 마라도나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거친 반칙을 연발하며 세계 최고의 수퍼스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 경기 후 마라도나는 “내게 반칙을 하던 저 소년은 틀림없이 이탈리아 대표팀과 나폴리의 미래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마라도나의 예언은 얼마 후 적중했다. 19세의 나이로 성인팀에 합류한 이래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며 나폴리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때 칸나바로를 주전으로 중용했던 감독은 훗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리게 되는 마르첼로 리피였다. 그러나 1995년, 나폴리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주축 선수들을 팔아 넘겨야 했고, 결국 칸나바로마저 그 대상에 포함되고 말았다.

작지만 높은 베를린 장벽, 파비오 칸나바로
<출처 : wikipedia(bjarnith)>

고향팀을 사랑했던 칸나바로는 서포터들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 뒤 무려 세 차례나 강경한 태도로 이적을 거부했다. 나폴리 구단 측은 끈질긴 설득 끝에 선수 본인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칸나바로는 파르마 이적 후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르마에서의 활약 덕분에 1997년에는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칸나바로가 처음 대표팀에 발탁되었을 때, 이탈리아 언론들은 “주전 센터백으로 활용하기엔 지나치게 체구가 작다”며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당시 비에리가 칸나바로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는 일화 또한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칸나바로를 꼬맹이라 비아냥대며 우습게 여기던 비에리는 연습 경기에서 완전 봉쇄를 당했고, 그 후 먼저 사과를 청한 뒤 둘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이처럼 칸나바로는 ‘작지만 매운 고추’였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등극한 칸나바로는 98년 월드컵 8강, 유로 2000 준우승 주역으로 맹활약하며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속팀 파르마에서도 UEFA컵 우승을 경험한 뒤 2002년에는 명문 인테르로 둥지를 옮겼다. 인테르 시절의 칸나바로는 그리 돋보이는 활약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유벤투스 이적 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 최고의 수비수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골문 앞엔 ‘베를린 장벽’이 있다
33세의 나이로 참가한 2006년 월드컵에서 칸나바로는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두길 원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2006년 월드컵은 칸나바로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될 것이 유력해 보였고, 그 전에 있었던 2002년 월드컵과 유로 2004에서 워낙 부진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손꼽혔지만, 실제로 우승할 것이라 예상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칸나바로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네스타가 부상으로 쓰러진 이후부터는 수비진을 조율하는 리더 역할까지 병행해야 했음에도 불구, 멈추지 않고 꾸준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철벽수비를 과시했다. 내로라하는 최고의 공격수들이 칸나바로 앞에서 힘없이 쓰러졌고, 그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16강과 8강을 넘어 준결승까지 올랐다. 개최국 독일과의 준결승전은 칸나바로의 활약이 최절정에 올랐던 이 대회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였다. 5골로 득점왕에 오른 클로제는 칸나바로 앞에서 힘조차 쓰지 못했고, 결국 이탈리아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독일을 2-0으로 누르고 12년 만의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독일 언론들은 경기 MVP로 선정된 칸나바로의 맹활약에 “이탈리아의 골문 앞엔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월드컵 이후 칸나바로에게 새롭게 붙은 별명도 ‘베를린 장벽(Il Muro di Berlino)’이었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칸나바로는 꿈에 그리던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팀의 주장이자 리더, 그리고 가장 높은 팀 공헌도를 나타낸 핵심 선수로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탈리아를 우승까지 이끈 것이다. 언론들은 이러한 활약상을 가리켜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한 명의 수비수가 선보인 최고의 퍼포먼스”라는 찬사를 내렸다. 비록 대회 MVP의 영예는 지단에게 돌아갔지만, 실질적인 MVP는 칸나바로였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실패
월드컵 이후 칸나바로는 ‘또 한 명의 갈락티코’로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강제 강등을 당한 유벤투스를 불가피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 시점에 레알 마드리드가 좋은 오퍼를 전달한 것이다. 칸나바로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재현해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스페인 무대에서는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하며 자존심을 구길 대로 구겼다.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3시즌을 보내는 동안 칸나바로의 활약상은 세리에A 시절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결국 2009년에는 친정팀 유벤투스로 복귀했고, 스페인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아닌 평범한 성적표를 남겼다. 그럼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칸나바로와의 재계약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칸나바로의 밝은 성격과 풍부한 경험, 그리고 지도 능력이 젊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 복귀 후 자신의 스페인 생활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과 관련, “나이는 크게 상관없었다. 체력적인 측면이나 컨디션은 2006년 월드컵 때 만큼이나 좋았다. 무엇보다 리그의 환경이 너무나도 달랐고, 그것이 내겐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이탈리아 팀들은 수비를 중시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황에서 빠르게 협력수비가 이루어지지만, 스페인 팀은 그보다 공격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둔다. 때문에 수비수가 수적 열세에 놓이는 경우도 훨씬 더 많다. 이러한 부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인간’ 파비오 칸나바로
칸나바로는 그 뛰어난 실력과 투철한 프로 정신 이외에도, 밝고 활달한 성격 덕분에 팬들로부터 유달리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델 피에로, 부폰, 네스타, 타키나르디, 튀랑, 비에리 등 여러 선수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언론들과의 관계가 지극히 양호한 몇 안 되는 이탈리아의 스타 선수로 손꼽히기도 한다. 반면 유벤투스 서포터들과의 관계는 2006년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인해 다소 악화되어 있는 상태다.

개인 취미생활도 다양한 편인데, 특히 칸나바로는 여름휴가를 반드시 고향 나폴리의 바다에서 보낸다. 요트 위에서 가족들과 함께 뜨거운 햇살을 내리 쬐는 것이 칸나바로에겐 최고의 바캉스라고 한다. 또한 피자와 파스타를 매우 좋아해 직접 요리하는 것에도 능숙하며, 휴가 중에는 되도록 축구 경기를 보지 않고 루팡 3세나 캡틴 츠바사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다.스타 선수가 된 이후 선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지난 2005년 5월부터는 선배 페라라와 함께 ‘페라라-칸나바로 재단’을 설립하여 나폴리의 불우아동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그 외에는 인종차별을 굉장히 혐오하는 편이며,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얼굴을 흑인처럼 분장하여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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