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에레라 감독은 4-2-4의 공격수 4명을 수비수 4명에게 대인마크시키는 한편, 최후방에 리베로를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2:1 수적 우위를 만들어 내거나 유사 시 커버 플레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아군 수비수가 상대에게 돌파를 허용하거나 움직임을 놓칠 경우에도 리베로가 빠르게 2차 수비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리베로의 존재로 인해 에레라 감독의 인테르는 1-4-3-2(5-3-2) 혹은 1-4-4-1(5-4-1)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다. 또,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 전술에 “빗장으로 골문 앞을 걸어 잠근다”는 뜻의 ‘카테나치오(Catenaccio)’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테나치오는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었고, 인테르에게 63/64, 64/65 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2연패라는 영광을 가져다줬다. 이탈리아 대표팀 역시 1966년 월드컵에서는 북한에 발목을 잡혀 고배를 들이켰지만, 유로 1968 우승을 통해 카테나치오의 위력을 전 유럽에 알렸다.
한편 이탈리아 이외의 유럽 국가들은 브라질과 벤피카의 4-2-4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다 거칠고 스피드 위주의 스타일을 갖고 있던 유럽 국가들의 경우 두 명의 미드필더만으로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1960년대 중반 들어서는 4-2-4에서 미드필더 한 명을 늘린 4-3-3 형태가 유럽 팀들의 보편적인 밑그림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66년 월드컵의 잉글랜드, 서독, 소련 등이 가장 대표적인 팀들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1960년대 후반 들어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이 4-3-3 쪽으로 흘러가자 카테나치오의 밑그림을 1-4-3-2(혹은 1-4-4-1)에서 1-3-3-3으로 변형시켰다. 이탈리아 역시 4-3-3을 기본 포메이션으로 활용하긴 했지만, 최후방에 리베로를 두는 카테나치오 전술로 인해 실제로는 1-3-3-3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던 셈이다.
1970년 월드컵 결승전은 공격축구를 대표하는 브라질의 4-2-4(혹은 변형 4-3-3)와 수비축구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맞붙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경기 결과는 브라질의 4-1 완승이었고, 카테나치오는 이 패배 후 급속도로 쇠락하며 유럽 축구의 주류로부터 벗어나고 말았다. 반면 네덜란드는 헝가리와 브라질의 공격적인 전술을 적극적으로 도입, ‘토털풋볼’이란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며 1970년대를 지배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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