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월드컵 전술사 III - 현대축구의 흐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2000년대 이후 나타난 현대축구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한 대회였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압박수비보다는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밀집수비에 초점을 맞추는 팀이 이전보다 더욱 늘어났고, 그로 인해 화끈한 공격축구보다는 승리지상주의적인 실리축구가 크게 유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와 같은 수퍼스타들은 대거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현대축구의 전술은 공격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해결 과제들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왜 밀집수비가 유행하는가
1970년대 토털풋볼의 태동 이후 현대축구는 ‘수비’보다 ‘공격’에 많은 비중을 두고 발전을 거듭해온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토털풋볼은 전방에서부터 시작되는 강력한 압박과 필드 플레이어 전원의 유기적인 위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공격축구의 가장 발달된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털풋볼이 압박수비의 유행으로 이어진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부터 유행한 압박수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하여 포백 라인을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드필드에서의 공간을 좁혀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볼을 빼앗아낸다는 것이다. 즉, 압박(Pressing)은 소극적으로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비 방법인 셈이다. 따라서 압박수비의 발달은 공격축구의 유행이란 1990년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불러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압박수비의 오프사이드 함정을 무너뜨리는 공격 전술이 빠르게 발달하기 시작했고, 오프사이드 규정 또한 공격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새롭게 개정됐다. 그로 인해 2000년대 들어 화두로 떠오른 것이 오프사이드 함정의 위험성과 관련된 논란이었다. 특히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대회와 같은 큰 무대에서는 오프사이드 함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로 여겨졌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팀들이 전진 형태의 압박수비보다는 후퇴하여 골문 앞을 지키는 밀집수비에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대축구의 밀집수비는 전문 리베로를 두는 1960년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수비) 전술과 많은 차이가 있다. 체계적인 지역방어를 바탕으로 철두철미하게 위험지역을 봉쇄하거나, 지역방어에 밑바탕을 두되 대인방어를 부분적으로 혼용시킨 형태가 크게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 2004 우승팀 그리스는 위와 같은 밀집수비 전술로 최고의 성과를 거둔 가장 대표적인 팀으로 손꼽히며, 2006년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이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결승까지 오르는 성과를 일궈냈다.


공격축구의 유행을 불러온 압박수비(좌)
오프사이드 함정의 위험이 지속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그 후 많은 팀들이 밀집수비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우)


특히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은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약팀들로 하여금 압박수비가 아닌 밀집수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두도록 만들었다. ‘득점하는 것’보다는 ‘실점하지 않는 것’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최대한 한 골 승부를 길게 끌고 가야 하는 약팀의 입장에서는 압박수비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장기전 형태의 리그보다는 생존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월드컵, 유럽선수권대회,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단기전에서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반면 현대축구의 공격 전술은 밀집수비 전술의 발달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 명의 플레이메이커나 수퍼스타의 개인기와 창조성에만 의존하는 1980~1990년대의 공격 방식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그만큼 현대축구의 수비 전술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발달해 있고, 그로 인해 스타 한 명이 경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도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와 같은 수퍼스타들도 완성된 조직 속에서 개인기를 발휘하지 않는 한 100% 빛을 발할 수 없다.

이러한 흐름은 남아공 월드컵이 ‘수퍼스타들의 무덤’으로 전락한 이유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음 브라질 월드컵이 남아공 월드컵의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공격 전술이 지금보다 발달함으로써 완성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전 세계 현역 지도자들과 분석가, 그 밖에 여러 축구인들에게 주어져 있는 매우 의미심장한 과제다.


쓰리백의 재조명
위와 같이 전진하여 압박하는 형태의 수비보다 후퇴하여 지키는 형태의 소극적인 수비가 다시금 유행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흐름은 바로 ‘쓰리백의 재유행’이다. 남미와 아시아 등에서는 꾸준히 그 활용도를 높이 평가받아 온 쓰리백이긴 하지만, 유럽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포백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췄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탈리아 세리에A를 중심으로 스페인, 잉글랜드와 같은 빅리그의 몇몇 팀들이 쓰리백을 다시금 활용하면서 그 선호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쓰리백이 유럽에서 재조명을 받게 된 이유도 밀집수비의 유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3명이 최종 라인에 포진하는 쓰리백은 포백에 비해 기본적으로 수비수의 숫자가 1명 부족하지만, 좌우 윙백의 빠른 공수전환이 뒷받침 될 경우에는 5명으로 최종 라인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5명이 최종 라인을 구축하여 골문 앞을 틀어막을 경우 쓰리백은 포백에 비해 밀집수비 전술을 구사하기가 훨씬 용이하게 된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4강 진출팀 우루과이, 대한민국과 한 조에 편성됐던 그리스, C조의 알제리, 그리고 G조의 북한과 H조의 칠레 등이 포백 이외에 쓰리백 계열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강팀들 가운데서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등이 쓰리백을 적극적으로 테스트하며 위과 같은 흐름을 반영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쓰리백은 밀집수비, 포백은 압박수비’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연결시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쓰리백의 재유행이 밀집수비 전술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높은 평가를 받아왔던 포백 수비라인(좌)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탈리아 세리에A를 중심으로 빅리그의 몇몇 팀들이 쓰리백을 다시금 활용하면서 그 선호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


스페인이 제시한 방향점
그렇다면 밀집수비 전술을 무너뜨리기 위해 현대축구의 공격 전술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할까? 이 부분에 있어 일종의 방향점을 제시한 팀이 유로 2008,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한 스페인이다. 짧은 패스를 지속적으로 주고받으며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중앙과 측면을 빠르고 고르게 공략하는 한편, 유럽식 조직력과 남미식 개인기를 효과적으로 접목시킨 ‘스페인식 퓨전축구’는 현대축구의 공격 전술이 나아가야 할 길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어느 한 쪽에만 편중된 고전적인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한 팀들은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공격적인 측면에서 세밀하고 창조적인 남미식 스타일을 효과적으로 접목시키지 못한 이탈리아, 프랑스, 잉글랜드 등은 모두 조기 탈락의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유럽식 조직력과 수비 전술을 간과한 채 지나치게 개인기에 의존하는 공격축구를 펼친 아르헨티나 역시 독일과의 8강전에서 0-4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반면 외질, 뮐러, 케디라와 같은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앞세워 한층 세밀한 스타일로 변모한 독일은 이번 대회를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네덜란드 역시 이전보다 실리적인 스타일로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판 페르시, 로번, 카윗, 스네이더르 4인방이 이끄는 공격진의 창조성과 세밀함에는 일제히 높은 점수가 매겨졌다. 비록 8강에서 대거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칠레와 파라과이를 비롯한 남미 팀들의 선전도 위와 같은 흐름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에는 압박수비로 인해 발생하는 뒷공간을 공략하기 위한 ‘스피드’와 ‘역동성’이 무엇보다 중시됐던 반면, 이제는 스피드 이외에도 상대의 밀집수비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세밀함’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인 셈이다. 결국 21세기 현대축구가 다시금 공수 양면에 걸쳐 균형을 이룸으로써 팬들에게 흥미를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스피드와 테크닉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이러한 스타일의 팀들이 더욱 완성된 경기력을 선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